
펜은 멈추지 않았다.
카이엔은 서명란 위에 자기 이름의 첫 글자를 썼다. 리에트는 그 글자를 보았다. 삼 년 전 첫날, 그가 서류를 내려다보던 그 각도로 그녀도 지금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. 그때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. 마른 잉크였다. 오래된 결심이었다.
두 번째 글자.
「폐하.」
부른 것은 리에트가 아니었다. 문가에 마리가 서 있었다. 마리는 서재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. 황후궁 시녀가 황제의 서재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. 마리의 손에 접시가 있었다. 삼 년 전 재를 담아 나갔던 그 접시였다. 접시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.
카이엔은 펜을 들지 않았다. 종이에서 떼지 않았다는 뜻이다. 잉크가 번지고 있었다. 두 번째 글자의 끝이 조금씩 두꺼워졌다.
「서쪽 별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.」
마리가 말했다. 리에트는 소매 안의 열쇠를 만졌다. 이백 화, 아니 이 년 전부터 거기 있던 것이었다. 따뜻했다.
「누가.」
카이엔이 물었다. 마리는 리에트를 보았다. 리에트는 카이엔을 보았다. 카이엔은 서류를 보았다.
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.
312화.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. 댓글은 다 읽고 있습니다. 전부요.